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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미인도 위작 맞다, 화랑협 임원 회유로 거짓 진술"

중앙일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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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합 14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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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 천경자 화백의 ‘미인도’.

천경자(1923∼2015) 화백의 ‘미인도’를 자신이 그렸다고 했다가 말을 뒤집었던 위작범 권춘식(69)씨가 “미인도는 내가 위작한 것이 맞다”고 다시 번복했다. 특히 권씨는 지난 3월 초 미인도를 그린 사실이 없다고 밝힌 이유에 대해 “당시 전·현직 화랑협회 고위 임원들의 회유를 받아 압박을 느꼈기 때문”이라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.

위작범 권춘식, 3월 진술 또 번복
천경자 화백 차녀, 미술관장 고소

중앙일보가 27일 입수한 권씨의 자필 진술서에 따르면 권씨는 99년 동양화 위조 사건으로 입건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담당 검사였던 최순용(53) 변호사에게 ‘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인 미인도를 본인이 그린 것’이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했다. 이 진술은 지난해 8월 천 화백이 사망한 후 유족들이 제기한 위작 논란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. 하지만 지난 3월 2일 권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“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. 수사에 협조하면 감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우물쭈물하다가 시인했다”고 번복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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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조범 권춘식씨가 작성한 진술서. 권씨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보관 중인 미인도를 자신이 위조한 게 맞다고 주장했다.

하지만 50여 일 뒤 천 화백 유족 측에 건넨 진술서에서 권씨는 “91년 미인도 사건 발생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의 감정위원으로 참여했던 A씨가 저에게 전화해 ‘진술을 번복하라. 착오였다고 하면 간단하다’고 회유했다”고 적었다. 또 “현 화랑협회 고위 관계자도 전화를 해 ‘현대미술관의 원본 그림도 직접 본 적이 없지 않느냐. 착오였다고 해라’고 했다”고 전했다.

권씨는 위작할 당시인 79~80년 무렵 S화랑 대표의 의뢰로 3점을 그려준 게 있고, 그 무렵 서울 인사동 다른 화랑의 주인이 화첩 종이와 견본 그림을 가져와 4호 크기(미인도 사이즈 27×22㎝)의 작은 그림을 총 5점 정도 그렸다고 기억했다. 그는 “(99년 검찰 진술 때) 미인도를 15년 전에 그렸다고 진술했는데 이 때문에 위작 시기가 84년으로 나가면서 많은 오해가 발생했다”고 설명했다. 국립현대미술관 등은 권씨가 84년에 위조했다고 주장했지만 80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권씨의 위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.

한편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(62)씨와 ‘위작 미인도 폐기와 작가 인권 옹호를 위한 공동 변호인단’은 27일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(50) 관장과 학예실장 등 관계자 6명을 저작권법 위반과 허위 공문서 작성,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. 권씨의 자필 진술서도 검찰에 제출했다.

문병주 기자 moon.byungjoo@joongang.co.kr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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